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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않고 그저 가려오 -노천명(盧天命)



말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내 창을 두드려놓고
무거운 침묵 속에 괴로워 허덕이는
인습의 약한 아들을 내 보건만
생명이 다하는 저 언덕까지 깨지 못할 꿈이라기
나는 못본 체 그저 가려오

호젓한 산길 외롭게 떨며 온 나그네
아늑한 동산에 들어 쉬라 하니
이 몸이 찢겨 피 흐르기로
그 길이 험하다 사양했으리----

"생"의 고적한 거리서 그대 날 불렀건만
내 다리 떨렸음은----
땅 우의 가시밭도 연옥의 불길도 다 아니었소
말없이 희생될 순한 양 한 마리
....다만 그것뿐이었소.....

위대한 아픔과 참음이 그늘지는 곳
영원한 생명이 깃들일 수 있나니
그대가 낳아준 푸른 가락 고운 실로
내 꿈길에 수놓아가며 나는 말 않고 그저 가오
못 본체 그냥 가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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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盧天命) / 1912∼1957


여류 시인. 아명은 기선(基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 1930년에 진명 여고보를 나와 1934년 이화 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 <조선 중앙 일보>학예부 기자로 근무하였는데, 진명 학교 재학 당시부터 과묵하고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 형성되었다. 1935년에 <시원>창간호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였고, 1938년에는 처녀 시집 <산호림>을 출간했는데, 여기에 대표작 [사슴]이 실려 있다. 이 해에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하여 체호프의 <벚꽃 동산>을 연출 했으며, <여성>지 편집 기자 및 <매일 신보>문화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1945년에 제 2시집 <창변>을 간행, 여기에 [남사당] [춘향] [푸른 5월]등의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였다. 6.25남침 때에는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부역의 혐의를 받고 9.28수복 후 구금되었다가 출감하였다. 1951년에 카톨릭에 입교하였으며, 1953년에 간행된 제 3시집 <별을 쳐다보며>에는 옥중시 2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고독벽과 깔끔하고 매서운 성격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1955년에 모교인 이대 출판부에 근무하며 <이화 70년사>를 집필한 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1957년에 빈혈로 사망하였다. 유고 시집으로 <사슴의 노래> <노천명 전집> <노천명 시집>과 수필집 <사슴과 고독의 대화>등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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