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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辛夕汀)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고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오는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소리도 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읍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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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辛夕汀) / 1907∼1974

본명은 석정(錫正). 전북 부안에서 출생.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중앙 불교 전문 강원에서 불전을 공부하였다. 1924년경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시를 투고하였고, 1931년 <시문학>3호에 [선물]이 실림으로써 동인으로 참가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엿다. 이어<시원>지에 [나는 어둠을 껴안는다] [밤이여, 그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푸른 침실]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그의 시에는 초기의 명상적, 전원적, 목가적인 낭만주의 시풍이 끝까지 변함없는 골격을 이루고 있다. 초기의 대표작인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이 밤이 너무나 깊지 않습니까] 등에서는 자연에의 동경과 애착을 보여 준다. 광복 후에는 시작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고,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꽃덤불] [심판] [봉화]등을 발표하였다. 시집에 [촛불] [슬픈 목가]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이 있고, 유고 수필집으로 [난초 옆에 어둠이 내리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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