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早春) - 정인보(鄭寅普)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 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을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ㅎ다 말고 헤쳐 본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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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鄭寅普) / 1892∼1950
학자. 호는 위당(爲堂)
서울에서 출생. 1910년 중국에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신규식,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교포 계몽에 힘썼다. 1918년에 귀국한 후 연희 전문 학교, 이화 여자 전문 학교, 중앙 불교 전문 학교 등에서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하였고, <시대 일보> <동아 일보>등의 논설 위원으로 총독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948년 국학 대학장을 거쳐 초대 감찰 위원장이 되었으나, 6.25남침때 납북되었다. 시조, 한시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주요 저서에 <조선사 연구> <조선 문화 원류고> > <담원 시조집>등이 있다.
저서 시조집 『<담원시조』(을유문화사, 1948), 연구서『조선사연구』(서울신문사, 1947),
『담원국한산고』(문교사, 1955), 『담원문록』(연세대 동방학연구소, 1967),
『양명학연론』(을유문화사, 1972) 등.
서울에서 출생. 1910년 중국에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신규식, 박은식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교포 계몽에 힘썼다. 1918년에 귀국한 후 연희 전문 학교, 이화 여자 전문 학교, 중앙 불교 전문 학교 등에서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하였고, <시대 일보> <동아 일보>등의 논설 위원으로 총독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948년 국학 대학장을 거쳐 초대 감찰 위원장이 되었으나, 6.25남침때 납북되었다. 시조, 한시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주요 저서에 <조선사 연구> <조선 문화 원류고> > <담원 시조집>등이 있다.
저서 시조집 『<담원시조』(을유문화사, 1948), 연구서『조선사연구』(서울신문사, 1947),
『담원국한산고』(문교사, 1955), 『담원문록』(연세대 동방학연구소, 1967),
『양명학연론』(을유문화사, 1972) 등.